나와 상대방 의식의 혼란: 베르히만 감독의 '페르소나'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 생활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닮은 사람이 있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는다. 얼굴 뿐만 아니라 의식도 비슷해진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의식은 과연 있는가? 과연 나는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잉기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 '페르소나'에서 알마의 얼굴 한쪽은 엘리자베스의 얼굴로 변한다. 이 때문에 알마는 "나는 없는가?"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이미 엘리자베스의 얼굴 한쪽도 안보이는데 그것은 그녀 역시 알마의 영향으로 인하여 자의식의 절반이 사라졌고 그것이 얼굴로 표현된 것이다. 알마와 엘리자베스의 얼굴 한쪽을 어둠으로 처리하여 완전한 모습이 있지 않다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흑백영화이기 때문에 그러한 양면의 얼굴모습을 더욱더 강렬하게 나타나고 있다.
간호사 알마는 영화배우 엘리자베스를 좋아했으나 임신으로 인하여 갈등한 것이 몹시 닮아 있다. 알마는 낙태를 했으나 엘리자베스를 실패하여 결국 남자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출산하면 배우생활을 하지 못할까 걱정되고 그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걱정된다. 결국 아이는 친척에게 맡겨지고 엘리자베스는 배우생활을 계속한다. 하지만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그를 간호하는 알마 역시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절반은 그녀가 되고 만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알마는 임신 당시 엘리자베스의 생활을 기억한다. 처음 본 엘리자베스이지만 그것을 회고한다. 이미 알마는 엘리자베스의 의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로 인하여 엘리자베스의 남편을 사랑하고, 그도 마찬가지로 알마를 사랑한다.
이처럼 '페르소나'는 자의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상대와 접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양의식이 생긴다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알마의 얼굴 한쪽이 엘리자베스로 바뀌는 순간의 영상은 절정을 이룬다. 알마가 엘리자베스의 임신장면을 기억하면서 말하는 장면은 마치 신들린 무당이 과거를 말하는 것과 같다. 최면에 걸려 오래된 과거를 기억하면서 말하는 것처럼. 알마는 과거 엘리자베스가 현 남편과 만나 사랑을 하고, 임신을 했던 장면을 보고 그녀에게 말한다. 결국 알마의 절규는 결국 완전한 자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신의 의식은 순수한 자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식과 공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결국 인간은 자신만의 의식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