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구로자와 영화 '꿈': 장자 호접몽과 고흐의 만남

daecho 2022. 5. 15. 18:37

영상미의 절정으로서 구로자와 감독의 영화 꿈은 8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이다. 3편에서 한 병사가 자신이 속한 군대를 만났는데 그 소대장으로부터 이미 사망했고 지금 그의 모습은 사후 유령이라는 답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떡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장자가 꿈에서 호랑나비가 되었는지 호랑나비의 꿈에서 장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한 병사의 고통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구로자와의 사회비판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다.

 

5편에서 화자인 나는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만나서 그에게 질문하지만 고흐로부터 귀찮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고흐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 것인데 구로자와 감독의 눈에 보인 고흐의 모습이기도 하다. 화자가 밀밭을 지나가자 총소리가 나면서 까마귀 떼가 날아간다. 고흐가 밀밭을 그린 후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구로자와 감독이 생각하고서 영상화시킨 것이다. 노란 밀밭과 검은 까마귀의 보색 대비가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다. 죽은 고흐를 산 고흐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평소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던 구로자와의 영상미가 절정에 달한 것이다. 그가 고흐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한다는 그의 인생의 미래가 영상 속에서 표현된 것 같다. 실제로 고흐의 밀밭은 최고의 그림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그것이 마지막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고의 그림을 그린 후 자살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고흐는 그와 같이 최고의 그림을 그린 후 자살했고, 구로자와 감독은 그와 같이 고흐의 그림을 살아 있는 영상으로서 최고의 영화를 만든 후 인생을 마감했다. 고흐의 그 그림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그림이었고, 구로자와의 그 영화 장면은 그의 최고 영화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영화이다. 그것은 고흐를 통해 구로자와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꿈에서라도 이루고 싶은 구로자와와 현실에서 그림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그의 인생이 장자의 호접몽과 유사하다. 마치 전쟁 때 죽은 병사가 자신이 죽은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처럼. 그것은 구로자와의 의도이든 아니든 장자 호접몽과 고흐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