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장상씨 총리인준 거부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이다.
daecho
2003. 1. 1. 14:35
남북전쟁의 승리로 흑인노예해방을 이끌어 낸 링컨은 게티스버그에서 연설할 때 "국민(people)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말했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돼 왔다. 우리 역시 해방
직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게 되었고 오늘날 미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비합리적인 면이 있는 것으로서 우리끼리의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그것이 어쨋든지 간에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키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도덕성과 업무능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로서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에서 인준하는 직책으로서 내각을 구성하고 이끄는 수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총리의 역할이고 현실적으로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총리는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되기 때문에 대통령 눈치나 보면서 언론매체에 얼굴을 들이대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같은 제도는 지나치게 불합리한 것으로서 행정부 내에 대통령을 견제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우리의 헌법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는 총리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욕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총리가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어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것은 마치 기름탱크 지고 용광로에 뛰어드는 격이라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장상씨는 국회에서 업무능력을 검증받기 이전에 이미 도덕성에서 치명타를 입고 인준을 받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무려 40년만에 처음으로 국회에서 인준을 못받은 총리서리로서 집으로 가야했던 그는 여성으로서 최초 총리지명자이면서 탈락하는 명예와 불명예를 한꺼번에 안게 되었다.
여성계에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총리인준을 못받았다는 비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천 보다 여성이 먼저라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발언이라고 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이전의 총리들이 장상씨 보다 도덕성에서 문제가 많다고 하는 지적에는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없는 현 정부의 탓이고 결국 힘없는 정부를 만들어 낸 국민의 탓이다. 장상씨에 대한 국회의 인준거부도 당리당략으로 인한 것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거부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장상씨를 거부한 국회의원을 국민이 뽑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로부터 총리제안을 받았을 때 장상씨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다면 아마도 이화여대총장으로서 고귀한 명예는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총리자리를 꿰차기 위하여 국회에서 아들과 시어머니, 비서들에게 모든 모욕을 다돌렸지만 자신과 더불어 이들의 불명예는 온세상에 다알려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집안망신까지 다 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여성으로서도 불명예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계는 오히려 반발을 하는 데는 여성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집단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장상씨 총리인준 거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하여 오랜만에 링컨이 말한 것 중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통하여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을 향해서 한발짝 더 나아가게 된 것이라고 평가할만하다.
그것이 어쨋든지 간에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키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도덕성과 업무능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로서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에서 인준하는 직책으로서 내각을 구성하고 이끄는 수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총리의 역할이고 현실적으로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총리는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되기 때문에 대통령 눈치나 보면서 언론매체에 얼굴을 들이대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같은 제도는 지나치게 불합리한 것으로서 행정부 내에 대통령을 견제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우리의 헌법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는 총리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욕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총리가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어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것은 마치 기름탱크 지고 용광로에 뛰어드는 격이라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장상씨는 국회에서 업무능력을 검증받기 이전에 이미 도덕성에서 치명타를 입고 인준을 받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무려 40년만에 처음으로 국회에서 인준을 못받은 총리서리로서 집으로 가야했던 그는 여성으로서 최초 총리지명자이면서 탈락하는 명예와 불명예를 한꺼번에 안게 되었다.
여성계에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총리인준을 못받았다는 비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천 보다 여성이 먼저라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발언이라고 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이전의 총리들이 장상씨 보다 도덕성에서 문제가 많다고 하는 지적에는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없는 현 정부의 탓이고 결국 힘없는 정부를 만들어 낸 국민의 탓이다. 장상씨에 대한 국회의 인준거부도 당리당략으로 인한 것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거부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장상씨를 거부한 국회의원을 국민이 뽑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로부터 총리제안을 받았을 때 장상씨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다면 아마도 이화여대총장으로서 고귀한 명예는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총리자리를 꿰차기 위하여 국회에서 아들과 시어머니, 비서들에게 모든 모욕을 다돌렸지만 자신과 더불어 이들의 불명예는 온세상에 다알려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집안망신까지 다 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여성으로서도 불명예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계는 오히려 반발을 하는 데는 여성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집단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장상씨 총리인준 거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하여 오랜만에 링컨이 말한 것 중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통하여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을 향해서 한발짝 더 나아가게 된 것이라고 평가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