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김대중대통령의 아시아적가치

daecho 2003. 2. 19. 02:26

산업혁명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대로 불리우는 근현대의 포문을 열어주었다. 따라서 근현대는 자본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은 세계최초의 자본주의국가가 되었고 연이어 프랑스, 미국에 전파되었으며 후발국가로서 독일과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계급갈등이 일어나고 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나오면서 1차세계대전 이후 러시아가 처음으로 공산화되었고 세계는 양분되었다. 자본주의세계에서도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의 평등을 수용하면서 복지국가의 기치를 내거는 사회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북유럽국가들은 보다 강력한 사회민주주의를 시행하였고 그 밖에도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프랑스의 사회당 등이 그러했다. 미국에서도 민주당은 서민들을 위한 정당이라며 평등에 약간 기울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정부가 탄생되었다. 90년대 들어서 사회주의국가들은 붕괴되었고 이 때문에 세계는 오직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만이 남아있다고 믿었었는데 이것을 깨고 등장했던 것이 바로 아시아적가치이다.

이것은 이광요 전 싱가포르수상이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다. 이광요는 가난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서울만한 크기의 싱가포르를 31년간 통치하면서 세계최대무역항, 세계3위의 정유시설, 다국적첨단산업기지, 정보인프라구축 등 선진국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으로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영국의 식민지였는데도 불구하고 1인당 GNI가 영국 보다 높아서 구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94년 봄 『포린 어페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비윤리적인 미국적가치라고 불리우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아시아적가치를 말했다. 즉 지도자는 요임금과 같은 덕으로서 민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유교의 권위주의에 기반한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수양론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대중은 같은 해 겨울 『포린 어페어스』지에 이광요의 아시아적가치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자신의 아시아적가치를 주장하였다. 이광요의 아시아적 가치는 권위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인권침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같은 사회조작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권위를 근거로 인권과 민주주의는 희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맞는 아시아적가치만이 오늘날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맹자가 주장하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와 경제사상으로서의 민본주의, 동학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사인여천)’는 등이 오늘날 아시아적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궁극적으로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 후 그는 IMF외환구제자금을 받을 당시인 97년 말에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대화를 이끌어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권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권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던 점은 높이 살만한 것이었다. 또한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었던 국가보안법을 개폐하려고 시도했던 점 역시 인권보호를 위하여 애쓴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성과에도 불구하고 둘째, 막내아들이 비리로 인하여 구속되거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으니 가정을 다스리는 제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셈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외치면서도 2000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동원해 현대건설에 수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공적자금이 투입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특정기업을 살린다는 비난도 무성했다. 최근에는 또한 남북대화 과정에서 5억달러를 비밀리에 송금하고서 통치행위라고 하면서 수사를 꺼려했으니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지역감정, 총재의 후보공천 등 고질적인 병폐를 직접 고치지 못하고 차기로 넘긴 것 역시 민주주의의 장애물이었다.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도 완벽하게 실현하지 못했다. 이것은 모두가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서 과정은 재끼고 결과만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그는 퇴임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평천하가 남아 있고, 그것을 세계평화의 실현이라고 해석하여 앞으로 그 일을 추진하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결과 이전의 과정을 보다 중요시하면서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