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용산기지, 속국을 자청하는 국회의원

daecho 2003. 12. 7. 15:55
요즘 용산기지는 주한미군의 이전문제로 시끄럽다. 그곳은 옛날부터 우리 스스로 속국신세를 자청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더욱이 아직도 속국을 자청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1882년 임오군란은 민씨세력이 물러나고, 대원군이 재집정하면서 개혁을 시도했으나, 고종은 청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여 외세를 끌어들였다. 조선은 스스로의 개혁을 포기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망국의 길을 걸어갔던 셈이다. 당시 청군이 주둔한 곳이 오늘날 미군기지가 있는 용산이다. 그들은 인천을 거쳐 용산기지에 주둔하면서 끊임없이 내정간섭을 했다. 당시 그들은 대원군을 천진으로 압송했다. 이 때 일본군도 일본공관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경비병들이 서울에 입성했다. 결국 조선의 도성인 서울에서 양군이 대치한 상대가 된 것이다.

조선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 구국의 기회가 있었으나, 다시 청군에 구원을 요청했고 일본군도 덩달아 출동하였으며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군이 승리하였고, 동학농민군들을 진압한 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군을 몰아낸 일본군은 용산기지를 본부로 사용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용산기지는 다시 민의 품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것도 잠시 미군정이 시행되면서 미군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 후 48년 8.15 때 대한민국정부가 수립하였고 미군은 물러갔다. 이 때 잠시 독립국으로서 대한민국이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이승만정부는 장면을 시켜 미군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 때 미군을 유엔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서울에 들어왔다. 마치 고종 때 청군이 인천을 거쳐 용산에 들어온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서울에 온 것이었다.

그 후 용산기지는 미군의 생활터전이 되었고 근처 주민과 학생들은 그들의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우리는 80년대 미군기지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주민과 학생들이 미군들에게 두들겨 맞는 일을 종종 보곤 했다. 그들은 우리들을 냄새난다고 동물로 취급했지만 그들의 냄새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겠다는 명분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하다. 현대전은 많은 군사들이 치르는 전쟁이 아니라 승부의 관건은 첨단무기이다. 이 때문에 용산기지를 그들이 차지할 필요는 없다.

최근 정부는 주한미군을 한강이남으로 이전하는 문제로 미국과 협상중이다. 미국은 잔류부대용 터로서 28만평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17만평을 주장하여 마찰을 빚고 있다. 주로 오락시설 때문에 넓은 땅을 차지해야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원 1백47명이 미군의 한강이남 이전을 반대하며 국회차원의 결의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200년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난 후 지속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남북대화와 통일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더군다나 남한이 자주적으로 국방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은 더 이상 조재할 이유가 없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기득권을 장악하고 놓치지 않으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주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그 같은 행위는 안보를 정치술책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군부독재시대 때 주로 이용했던 술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정치인들이 아직도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날 스스로의 개혁을 포기하고 속국을 자처하여 외세를 끌어들였던 부끄러운 조상들을 잘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들은 서울의 안보공백, 해외투자급감, 대외신인도 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한강이남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이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이제 그러한 어리석은 행위는 그만하고 국회의원 본업에 충실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