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왜곡,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한국!
요즘 중국은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
오늘날 중국의 뿌리는 황화문명이다. 반면에 한국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동이(東夷)족이라고 불렀고 그 문명을 동이(東夷)문명이라고 칭할 수 있다. 맹자는 순임금을 동이(東夷)사람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동이(東夷)문명은 순임금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에 황하문명은 주(周)나라가 일구어낸 문명이다. 주나라의 창업주는 문왕이며 그는 서이(西夷) 사람이라고 『맹자』가 증명했다. 문왕은 순임금을 존경하는 조상으로서 모범으로 삼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공자, 맹자, 노자, 장자에 이르기까지 순임금은 요임금과 함께 요순이라고 칭해지며 성인(聖人)으로서 추앙받았다.
서이(西夷)는 이족(夷族)의 한갈래였고 이족(夷族)은 9개의 종족이 있어서 『논어』에서는 구이(九夷)라고 칭하기도 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자 어떤 사람이 “좁은 곳인데 어찌 살려고 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공자는 “군자가 사는데 어찌 좁다고 하겠는가?”라는 대화가 나온다.
송나라 때 주희는 누(陋)를 ‘누추하다’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나라 이후에 사용했던 뜻이다. 공자가 지었다는 『춘추』에서 ‘좁다’라는 뜻으로 썼다. 또한 한나라 때 허신의 『설문해자』에서도 ‘좁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구이(九夷)는 좁지만 군자가 사는 땅으로서 문명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고고학유물로 보았을 때 주나라의 황하문명은 동이문명을 수입해서 일어난 문명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과 같은 종류로서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황하문명은 황하 이남, 양자강 이북의 중원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동이문명은 황하이북인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중국문명의 뿌리라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황하문명의 주나라는 결국 서이(西夷)사람이 세운 문명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뿌리는 이족(夷族)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은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하여 변방을 모두 오랑캐라고 불렀다. 주나라는 견융의 침입을 받아 호경에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 때를 동주시대 또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 공자가 지은 『춘추』는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인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위하여 쓴 역사책이다. 이 때 오랑캐는 주로 견융 즉 서융을 가리킨다.
또 당시 북적인 호(胡)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 그들을 막기 위하여 진시황제 때 세워진 것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이 밖에도 오늘날 티벳지역의 남만의 침입을 받았다. 이러한 침입으로 인하여 중국은 혼혈민족이 되었다. 본래 중국은 이족(夷族)의 한 갈래인 서이(西夷)의 나라였지만 서융, 남만, 북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혼혈민족이 된 것이다.
또한 서이(西夷)의 문왕이 동이(東夷)의 순임금을 조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중국의 종주국이자 뿌리는 동이(東夷)족이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의 뿌리는 동이(東夷)족인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이(東夷)족의 역사인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고구려가 나온다. 따라서 그들은 고구려를 동이(東夷)의 역사라고 보고 있다.
물론 중국의 뿌리는 문명으로 보나 종족으로 보나 동이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아도 큰 결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인 서이(西夷)는 동이(東夷)의 후손과 같으므로 후손이 조상을 부정하며 조상의 것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천륜을 어기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부정한다면 중국은 뿌리 없는 혼혈종족으로서 사생아라고 칭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