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고급아파트 특혜분양의혹사건을 바라보며

daecho 2003. 1. 1. 14:37
요즘 성남시 분당구 백궁.정자의 고급아파트 특혜분양사건에 국회의원, 판감사, 국정원의 고위관료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일어나 안팎이 시끄럽다. 이들은 한결같이 민중이 뽑은 국정감사자, 국가질서를 바로잡는 사법기관,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보기관 등 국가의 기틀을 지탱해주는 관료들이다. 이들은 남을 사정하기 전에 자신부터 깨끗해야 만이 권위가 서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먼저 비리의혹을 사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과 대조되는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 청백리 황희는 최고벼슬인 영의정으로 재직하면서도 몹시 청렴하여 장마철에는 초가지붕이 새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그가 환갑이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이 아버지 집이 초라하다고 하여 자신의 집에서 환갑잔치를 준비했다. 이 때 황희가 아들의 집에 와보니 수많은 하객들이 있었고 잔치상이 화려한 것을 보고 자신의 회갑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당시 그의 아들도 관료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혈세로 먹고사는 관료의 환갑잔치상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며 인사도 안받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아들들은 황희가 생존해 있을 때 큰집, 화려한 잔치상을 멀리했다고 한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일인지하(一人之下)의 영의정으로서 잔치상이 화려하다고 하여 환갑잔치도 물릴 정도로 청백리였던 그는 공무집행에서도 준엄했다. 그가 승정원 도승지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태종이 총애했던 평양군 조대림이 대궐 출입시 직급보다 높게 관복을 입으면서 무례하게 굴자 감찰기관의 수장인 대사헌 맹사성이 태종에게 알리지 않은 채 체포하여 국문을 하자 태종이 크게 노하여 맹사성을 죽이려고 수레에 싣고 나가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희는 그 부당함을 태종에게 간했으나 시정이 되지 않자 부하관료들을 시켜 승정원 기와를 모두 걷어내게 하였다. 이에 놀란 태종이 화를 내자 황희는 "왕을 보좌하는 승정원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 기와를 걷어내고 있습니다."고 하자 태종은 그 즉시 맹사성을 복직시키고 조대림에게 벌을 내렸다. 그 후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황희를 쓰려거든 정승으로 등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게 하라."고 조언했다. 이로인하여 청백리 정승 황희가 탄생하여 후세의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당시 총신을 체포하여 국문했던 맹사성, 황희의 청렴과 의로움은 오늘날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고급아파트 특혜분양사건으로 불거지고 있는 고위관료들의 행태가 참으로 한심하기만 하다. 민중의 세금으로 살고 있는 관료들이 고급아파트를 산다는 자체가 불량한 짓인데도 불구하고 특혜로 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은 관료들의 부정이 극에 달했다고 할수 있다. 더욱이 국정감사를 통하여 정부의 부정을 감시하면서 민중의 뜻을 국정에 반영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특혜로서 고급아파트를 샀다가 다시 팔았다는 것은 심각하다. 더군다나 김대통령의 가신으로서 그러한 짓을 했다는 것이 문제다. 또 국내외 기밀정보를 취재하여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국정원 간부들이 이러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대통령에게 진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통했을 때는 국정원 지붕을 뜯어버리는 기개를 발휘할 때에 스스로가 고급아파트 구입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더욱이 혼란한 이 때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비리를 수사하고 판결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한심하다.

이러한 때에 민중들은 "이들을 다시 수사하는 검사들과 판결하는 판사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또 이 시대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라고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