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레드컴플렉스와 붉은 악마

daecho 2003. 1. 1. 14:36
이제 막 월드컵을 끝내면서 태극전사들의 4강진출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무한한 감동과 환희,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이러한 열광의 바탕이 된 전국적인 붉은 악마의 응원은 또하나의 인류문화를 창출해 냈고 우리에게는 레드컴플렉스를 극복하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붉은 색은 우리에게 급진적인 좌경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붉은 광장'은 15세기말에 만들어져 17세기말부터 현재의 이름을 써왔으며 이곳에서 주로 처형, 시위, 폭동, 열병, 연설 등의 무대가 되었다. 또 레닌의 묘가 있고 지금은 철거 된 레닌의 동상이 있었고 노동절, 10월혁명 기념일을 이곳에서 열었다. 구소련의 군대는 '붉은 군대'라 하였고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은 극좌파 비밀테러단체였다. 붉은 여단의 창설자 레나토 쿠르치오는 1967년 트렌토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좌파사상단체를 만들어 마르크스, 모택동, 체 게바라의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했다. 그는 '붉은 여단'을 조직하여 밀라노의 공장과 상점에 폭탄을 투척하고 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하여 살해했고 NATO의 제임스 도지어 미군 준장을 체포하는 등의 과격한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붉은 색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국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국기의 바탕색도 붉은 색이었고 북한국기 역시 붉은 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급진적인 좌경 청년들에 의하여 붉은 색은 줄곧 환영받아왔다. 과격한 선동 문구들은 온통 붉은 색을 칠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민주화운동을 위하여 헌신해왔지만 당국의 통제로 인하여 친북으로 알려져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사회에서는 레드컴플렉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청앞 광장에서 1987년 6월민주혁명이 일어나 대통령 직선제라는 결실을 가져와 한국민주화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들의 분노와 혈서가 쓰여진 붉은 깃발이 하늘을 뒤덮었던 시청과 광화문앞의 광장은 온통 붉은 색이었다.

이러한 붉은 색은 뉴밀레니엄시대가 도래한 후 오늘의 한국,일본의 월드컵 대회때 다시한번 이곳 하늘을 뒤덮었다. 이곳 뿐만아니라 전국의 광장이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혔다. 이날은 지난날 분노의 붉은 혈서가 아니라 'Be the Led'가 쓰여진 붉은 색의 셔츠를 입고 기뻐하는 군중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붉은 악마'이며 대한민국팀의 응원단이었다. 아직도 행정당국에서는 시민들이 붉은 색 선전문구를 쓰는 것을 막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붉은 악마'들은 즐겨 쓰고 있으며 이제 모든 국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붉은 색이 유행이 되었다.

결국 이들로 인하여 레드컴플렉스는 극복되었고 이제는 이것을 넘어서서 유행으로 전국의 국민들에게 번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