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간사이의 약속으로서 기호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소리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의사소통이 되었을 때 언어라고 불리워진다. 그 전에는 그냥 소리일 뿐이다. 물론 언어도 소리에 속한다. 소리는 서로 다를지라도 다 똑같이 소리라고 부른다. 반면에 언어는 서로 다르면 다른 언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동물의 소리를 언어라고 하지 않고 소리라고 부르지만 인간끼리 말하는 소리를 언어라고 하며 한국어, 영어 등으로 다르게 구분한다. 우리의 언어에서도 소리가 같을지라도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마찬가지로 문자에서도 같은 글자이지만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관련이 없지만 관련이 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김훈의 소설 ‘화장’(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은 문자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것을 서로 관련시켜 줄거리를 엮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내의 시신을 화장시키면서 자신이 다니는 화장품 회사의 아름다운 매력을 지닌 부하여직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시신을 화장시키는 것과 화장품 회사의 화장은 같은 문자이지만 의미는 다르다. 따라서 서로 관련은 없다. 하지만 화장품 회사의 중역이 아내의 시신을 화장시키고 있을 때 화장은 서로 관련이 깊을 수 있다. 물론 화장품 회사의 화장과 화장터의 화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주인공이 화장품 회사의 중역으로 재직하면서 아내의 시신을 화장시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서로 관련은 없다. 주인공 역시 화장품 회사의 화장과 죽은 아내의 화장에 대하여 관련을 짓지 않는다. 단지 소설가 김훈이 그것을 관련시켜 줄거리를 전개시키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소설 속에서 화장품의 젊고 매력적인 아가씨 추은주와 죽은 아내의 화장은 아름다움과 추함의 상징으로서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젊은 시절의 아내는 주인공을 위하여 희생을 했지만 암에 걸려 신음하고 있을 때 그것은 추함이었다. 특히 그러한 상황에서 추은주를 대비적으로 생각했을 때 추함의 절정을 이룬다. 젊었을 때 아내의 희생은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물론 순수한 미(美)는 아니다. 왜냐하면 아내의 희생은 선(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인공에게는 윤리적인 죄의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죽은 아내를 화장시킴으로 인하여 죄의식을 씻을 수도 있다. 물론 자연스럽게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아내의 화장을 끝내고 그녀가 키웠던 개도 안락사를 시켜 처리한다. 아내의 손길이 담긴 개를 없애는 것은 윤리적인 죄의식을 없애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죄의식이 없다거나 그것을 개선하려 하지 않고 씻으려 한다면 그것은 악이다. 악은 결국 추함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인공이 악 혹은 추함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병상의 아내가 추함으로 등장한다.
아내를 화장하는 과정에서 추은주도 결혼하기 위하여 그의 곁을 떠난다. 미와 추의 상징이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회사일 뿐이다. 새로 나온 화장품 광고의 컨셉을 정하는 일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벼워진’ 혹은 ‘내면여행’ 중에서 선택하는 일만이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전자를 선택한다. 죽은 아내의 화장과 매력적인 추은주를 모두 떠나보낸 후 가벼워진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같은 화장이지만 미와 추의 상징을 모두 떠나보낸다고 해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미는 추함이 함께 있을 때 존재한다. 추함이 없다면 미도 없다. 그에게 아내와 추은주가 모두 떠난 것은 미와 추가 모두 떠난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가벼워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이와 같이 화장이라는 같은 문자에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사실을 관련지어 전개해나는 것이 흥미롭다. 한국문단에서 흥미위주의 소설이 주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철학성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단지 김훈이라는 소설가가 그러한 방법으로 관련을 짓고 있기 때문에 작위성이 강하다는 것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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