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먹는 것이다. 그 다음이 입은 것이고 세 번째로는 성관계이다. 따라서 인간의 1차적인 욕구는 먹는 것이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 아무일도 할 수 없다. 아무리 위대한 선비도 먹지 못하면 남의 집 담을 넘는 경우가 생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후 국가경제는 피폐해지고 민간경제도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최대한의 쌀생산량을 누구나 다 기대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못자리에 볍씨를 뿌리고 어느정도 모가 자라나면 줄을 맞춰서 모를 심는 모내기법인 이앙법이 민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논에다 직접 볍씨를 뿌렸기 때문에 벼가 가지런하지 못해 피를 뽑는데 많은 일손이 필요했으나 이앙법이 퍼진 후로는 모가 가지런하기 때문에 피뽑기가 수월했다. 이로인하여 적은 수로 많은 hs을 경작하는 광작이 일어나면서 영세농민들이 지주들에게 논을 팔게 되어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또한 대동법의 실시로 왕실에 들어가는 물품을 공인들이 주관하면서 주문생산이 일어나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대청,대일무역이 성행하면서 상업이 더욱 활기를 띄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농산물, 공산품 등도 덩달아 크게 일어났다.
이 때문에 농공상업에서 이미 부익부빈익빈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부유한 농공상인들도 공명첩을 사면 양반이 되었다. 왕실에서는 재정을 충당하려고 공명첩을 팔았고 양반들도 3대에 걸쳐 벼슬아치를 내지 못하면 잔반으로 전락하여 평민과 다름이 없었다. 사실상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하면 출세길이 열리지만 우선적으로 끼니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부한다는 게 불가능하였고 이로인하여 선비들이 취직을 하게 된다. 계산에 밝으면 주로 지주, 거상의 서기가 되었고 밝지 못하면 푸주간, 대장간 등 요새말로 공돌이로 취직하는 경우도 많았다. 선비들이 취직을 하여 성공하는 예는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상 출신도 공부를 하여 명성을 덜치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최고의 실학자로 추앙 받는 최한기는 송상의 도고(전문도매상)출신이다. 그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또한 전주의 거상출신 전우는 성리학을 공부하여 이율곡, 송시열의 적통을 잇는 대성리학자로 성장하였고 구한말에 최다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당시에는 출신성분 등을 따지지 않고 능력이 있으면 어느 분야에서나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사회분위기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출세하려면 우선 대학을 나와야 한다. 출세가 아니라 목에 풀칠하려고 하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학벌이 낮으면 쉽지 않다. 현재 대졸실업자 보다 고졸실업자 수가 훨씬 많고 심각하다. 취업을 했어도 고졸, 전문대졸, 대졸사원의 임금격차는 두배 이상이고 승진하는 데에도 격차가 심하다. 또한 대졸자들도 어느학교 출신인가가 취업 뿐만아니라 승진에서 상당한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도 국내기업들이 국제경쟁력에서 자구 밀리는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사업을 하려고 해도 이미 대기업들이 동네의 할인마트까지 점령을 했기 때문에 쉽지 않다. 결국 취업을 해야하는데 학벌이 안좋으면 취직하기도 어렵고 한다해도 능력발휘가 힘들다.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19세기 보다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인 사회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후 국가경제는 피폐해지고 민간경제도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최대한의 쌀생산량을 누구나 다 기대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못자리에 볍씨를 뿌리고 어느정도 모가 자라나면 줄을 맞춰서 모를 심는 모내기법인 이앙법이 민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논에다 직접 볍씨를 뿌렸기 때문에 벼가 가지런하지 못해 피를 뽑는데 많은 일손이 필요했으나 이앙법이 퍼진 후로는 모가 가지런하기 때문에 피뽑기가 수월했다. 이로인하여 적은 수로 많은 hs을 경작하는 광작이 일어나면서 영세농민들이 지주들에게 논을 팔게 되어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또한 대동법의 실시로 왕실에 들어가는 물품을 공인들이 주관하면서 주문생산이 일어나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대청,대일무역이 성행하면서 상업이 더욱 활기를 띄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농산물, 공산품 등도 덩달아 크게 일어났다.
이 때문에 농공상업에서 이미 부익부빈익빈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부유한 농공상인들도 공명첩을 사면 양반이 되었다. 왕실에서는 재정을 충당하려고 공명첩을 팔았고 양반들도 3대에 걸쳐 벼슬아치를 내지 못하면 잔반으로 전락하여 평민과 다름이 없었다. 사실상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하면 출세길이 열리지만 우선적으로 끼니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부한다는 게 불가능하였고 이로인하여 선비들이 취직을 하게 된다. 계산에 밝으면 주로 지주, 거상의 서기가 되었고 밝지 못하면 푸주간, 대장간 등 요새말로 공돌이로 취직하는 경우도 많았다. 선비들이 취직을 하여 성공하는 예는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상 출신도 공부를 하여 명성을 덜치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최고의 실학자로 추앙 받는 최한기는 송상의 도고(전문도매상)출신이다. 그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또한 전주의 거상출신 전우는 성리학을 공부하여 이율곡, 송시열의 적통을 잇는 대성리학자로 성장하였고 구한말에 최다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당시에는 출신성분 등을 따지지 않고 능력이 있으면 어느 분야에서나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사회분위기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출세하려면 우선 대학을 나와야 한다. 출세가 아니라 목에 풀칠하려고 하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학벌이 낮으면 쉽지 않다. 현재 대졸실업자 보다 고졸실업자 수가 훨씬 많고 심각하다. 취업을 했어도 고졸, 전문대졸, 대졸사원의 임금격차는 두배 이상이고 승진하는 데에도 격차가 심하다. 또한 대졸자들도 어느학교 출신인가가 취업 뿐만아니라 승진에서 상당한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도 국내기업들이 국제경쟁력에서 자구 밀리는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사업을 하려고 해도 이미 대기업들이 동네의 할인마트까지 점령을 했기 때문에 쉽지 않다. 결국 취업을 해야하는데 학벌이 안좋으면 취직하기도 어렵고 한다해도 능력발휘가 힘들다.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19세기 보다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인 사회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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