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기다림의 아름다움, '부베의 연인'

daecho 2008. 12. 3. 00:15

 

2주에 한번 연인을 만나러 기차여행을 하는 여인 그리고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 그것은 주말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1944년 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골에서 시작된 연인들의 피치못할 사랑이야기를 애절하게 표현한 1963년작 '부베의 연인'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당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에 해당되는 황금곰상을 수상하였다.

 

시골처녀로서 장기수를 연인으로 두고 그늘진 얼굴로 연기하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 오똑한 콧날, 제법 큰 입이 애절함과 거리가 먼 인상이다. 오히려 도도해 보이는 얼굴이다. 특히 소피아 로렌과 비슷한 외모로서 작은 소피아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이미지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을 잘 소화해 냈다. 오히려 그 누구 보다도 마라 역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부베 역의 차키리스도 감정변화가 거의 없는 굳은 표정이 잘 어울린다. 공산당 파르티잔으로서 나름대로 정의를 위하여 파시스트를 죽이고 도피하는 역할이 딱딱한 표정과 잘 맞는다.

 

더욱이 약간 빠른 리듬 때문에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운드는 내용과 별로 관련이 적을 것 같아도 애절하게 들리는 듯 하여 나름대로 괜찮게 들린다. 가끔 약간 느린 템포로 연주할 때는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 음악은 아직도 멜로드라마의 전형과 같아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파르티잔인 오빠의 죽음을 알리러 온 부베와 그의 바지를 꿰매주는 마라는 그것이 인연이 되어 사랑이 시작된다. 그가 단순히 소식을 전달해주고 가버리자 마라는 그를 그리워하고 있을 즈음에, 다시 부베는 그녀를 찾아온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아버지와 상의하여 약혼을 결정한다. 그러한 부베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살인자로서 도피중인 그를 따라간다. 도시로 가서 뱀가죽 신발을 선물 받고 기뻐하고, 신발에 맞는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며,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며 매달리는 마라, 그리고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부베의 사랑이 애틋해 보인다.

 

14년이라는 감방생활에서 격주로 열차타고 찾아가는 7년의 생활, 그리고 7년 후에 출소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낳을 계획 때문에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 그동안 새로운 연인을 만나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베에 대한 면회를 선택한 그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긴 열차여행을 떠나는 마라. 그러한 것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긴 여운을 남기게 한다.

 

다소 딱딱하고 거칠게 들리는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언어가 그들의 순수한 사랑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불변의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더 어울리기도 한다.

 

화려한 칼라가 아닌 흑백화면 때문에 지루할 것 같아도 오히려 투박한 시골마을 그리고 그들의 세련된 사랑과 거리가 먼 우직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더욱 안성맞춤이다. 특히 단순한 사랑이 아닌 파르티잔의 이념에 따른 부베의 살인 그리고 그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하는 마라의 이야기가 오히려 칼라 보다 흑백영상이 인상적이다.

 

물론 마라는 파르티잔이나 파시스트에 관한 것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단지 그녀는 오직 부베만이 있을 뿐이다. 부베 역시 두 이념에 대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이고 단지 감정적으로 파르티잔을 선택하고 파시스트를 미워한다. 결국 두 이념이 아닌 새로운 친미 성향의 공화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그로 인하여 부베는 14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는다. 그만큼 그들은 현실적이지 못하였다. 그들의 사랑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고, 그 때문에 순수하게 비쳐진다. 낮은 음색, 어두운 화면, 칙칙한 시골마을 등과 그들의 지순하고 애절한 사랑이 잘 표현되었다.

 

그들의 사랑 외에도 패전 직후 혼란한 이탈리아의 정체, 시골마을에까지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의 갈등이 뻗쳐 살인이라는 극단에 치닫는 내용은 당시 사회상을 잘 보여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