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이창동, 사회로부터 개인문제로의 전환

daecho 2008. 11. 20. 18:17


이창동의 영화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사회성 짙은 것들이 다수이다. 서울 근교 고향에서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살고 싶으나 이미 도시화 되어 그렇게 할 수 없는 '초록물고기'의 막동이, 민주화 데모를 진압하다가 죄책감을 느끼면서 무력한 인생을 사는 전직 경찰의 방황을 그린 '박하사탕',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장애인과 전과자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 등의 영화가 바로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것들이다.


그러한 영화 속에서 이창동은 언제나 과거 운동권의 틀 속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기존 가치관에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파문을 일으키는 문제작을 만드는 김기덕 감독과 함께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유명하지만 양자를 비교하기가 곤란한 면이 있다. 따라서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이창동은 리얼리즘 감독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밀양'은 더 이상 사회문제에서 갇히지 않고 개인문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그의 고향으로 내려가 살면서 결국 아들도 잃어버리고 만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더 이상 의지 할 곳이 없자 기독교에 몰입하지만 그것도 허상일 뿐이다. 아들을 죽인 죄수를 찾아가 하느님의 앞에서 용서고 구원하려고 하지만 이미 그도 구원을 받았다고 오히려 더 큰소리로 설교한다.


결국 하느님의 구원도 만족을 못한 채 다른 일에서 찾으려고 그녀를 교회로 인도한 약국 아줌마의 남편을 홀려 야외에서 성관계를 맺지만 그 역시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머리를 자르면서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었고, 그녀를 애타게 따라다니는 사내에게 의지하게 된다는 의미의 결말을 맺는다.


이 영화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여인이 나약하게 보이지만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신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결국 그녀를 사랑하는 사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사내는 성직자도 아니고 숭고한 신자도 아닌 속물로 가득찬 카센터 사장이다. 신의 구원 보다 속물스럽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내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절망적인 여인 역의 전도연 그를 사랑하는 사내 역의 송강호의 연기 또한 튀지 않으면서도 속물스러운 배역이 자연스럽다. 주연이면서도 조연과 같이 연기하는 송강호의 대사가 감칠맛 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를 코믹하면서도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사실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개인 특히 여인에 카메라 줌을 맞추었다는 것이 기존의 그의 영화와 구별된다. 아마도 밀양이라는 영화는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인 이전에 인간, 그 이전에 자연, 그 이전에 존재에 뿌리를 둔 채 다시 거꾸로 올라와 사회 그리고 개인문제를 다루었다면 보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그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만든다면 지루함이 더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에게 친숙한 대사를 사용하여 지루함을 없애주면서 그러한 점들을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전도연과 송강호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화의 색깔 등도 좀더 고려해 보아야 한다. 화면색깔과 영화내용이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는 것이 좀 걸린다. 그러한 점을 잘 표현한 것이 김기덕, 배용균 감독이 다.


앞으로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하면서 작가주의 감독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