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나온 것이다. 국가, 민족간의 전쟁은 고위층의 욕심으로 인하여 벌어진다. 그러나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사람은 그 장본인인 고위층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따라서 고위층의 욕심 때문에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러한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꾸미지만 그러한 것은 처음부터 성립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기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치 이기심이 극치에 달했을 때 상대방을 완전히 부정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 전쟁에서 보다 화해의 모습을 찾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막는 것이다. 그 희생자가 꽃처럼 어름답고 꿈많은 소녀라면 더욱더 슬퍼질 수밖에 없다.
고다르의 ‘아워뮤직’은 그러한 점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예루살렘의 극장에서 총에 맞고 죽는 장면은 전쟁의 참담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화해를 모색하고 결말 부분에서 미군의 초소를 통과하여 해변으로 가고 그곳에서 노는 장면은 결국 화해하고자 하는 고다르의 열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제목도 ‘마이 뮤직’이 아니라 ‘아워뮤직’이라고 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은 솔로도 있지만 합주도 있다. 또 합주라고 할지라도 불협화음이 있지만 잘 어우러진 화음도 있다. 고다르는 솔로간의 대립, 불협화음을 상징하는 전쟁 속에서도 화해를 모색하여 합주, 잘 어우러진 화음을 내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화해도 전쟁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처럼 정-반-합의 변증법으로서 전쟁 속에서 화해를 묘사하고 있다.
이전의 영화 ‘비브르사비’에서 고다르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점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아가씨가 욕심을 부리면서 화려하게 부활하려다가 결국 창녀가 되어 살해당한다는 내용의 그 영화 속에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신분계층은 넘어 설 수 없는 사회를 비판했었다.
그러나 ‘아워뮤직’에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문제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만큼 연륜이 쌓였다는 증거이다. 비판이 곧 대안이라고 하지만 직접적인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가 깨달은 것이다. 1편 ‘지옥’에서 보여주는 베트남, 사라예보, 팔레스타인, 크림전쟁 등을 콜라쥬 방식으로 엮어냈다. 그것은 전쟁이란 끊임이 없고 완전히 부자연 스러운 불협화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간, 공간을 넘어서 전쟁은 영원한 것이고, 세계에 존재하는 보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은 필연성, 인과성이라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고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늘 벌어진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유의 콜라쥬 방식으로 처리했고,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1편을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2편에서는 고다르가 직접 사라예보의 ‘유럽문학과의 조우’에 참석하여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팔레스타인의 예술가와 만나 대화를 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하여 3편의 ‘천국’에서 화해로써 결말을 맺는다. 화해의 모색에서 고다르가 직접 나온다. 전쟁을 방조한 것이 바로 지식인이기 때문에 지식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접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은 전쟁을 막아야 하고, 이미 벌어졌다면 화해를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으로 인하여 자신이 직접 영화 속에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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