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의 유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구양수는 “군자는 같은 도로써 붕당을 만들고 소인은 같은 이익으로써 붕당을 만드는데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소인은 국록과 재물을 탐하여 이익이 같을 때는 잠깐 같은 당이 되지만 붕당이 되는 것은 거짓이고 이익을 보면 먼저 쟁취하려 하고 이익이 끝나면
사귀는 것이 멀어지고 심하게는 해를 입히니 비록 친척이라도 서로 보호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소인은 붕당이 없다.” 라고 하여 이익만을 쫓아가는
정치인들을 소인이라고 하여 경멸했다. 이러한 그의 붕당론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계승되어 군자의 붕당정치를 표방하게 된다. 반면에 자신들의 당을
군자의 붕당이라고 하면서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당쟁이 생겼고 많은 선비들이 희생되어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받아
황천길로 직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붕당정치는 오늘날 민주정치에서 정당정치라는 것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붕당정치는 같은 도 즉 윤리를 기반으로 한 정책인데 반해 정당정치는 그저 같은 정책으로 뭉친 정치형태이다. 하지만 현대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윤리가 기반이 되기 때문에 정당정치는 붕당정치의 연속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후 우리의 정치사는 민주주의라는 정곡에서 벗어나 질곡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때마다 민은 질곡에서 벗어나 정곡으로 돌렸지만 정치인들이 다시 질곡으로 몰아넣었다.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민들은 4.19혁명을 성공시켰으나 다시 군인들에 의한 반혁명을 통하여 질곡으로 빠졌다. 이로 인하여 군부독재의 독기는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고 이를 거부하는 민들은 지난 87년 6월혁명의 성공으로 군부독재를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양김의 단일화 실패로 군부출신에게 정권을 넘기면서 민주화는 다시 연기되어 질곡으로 빠지고 말았다. 당시 민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양김에게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양김은 공익을 내던지고 오직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하여 온몸을 대선판에 내던졌다. 민들이 이루어낸 혁명을 양김은 반혁명으로써 6월혁명의 가치를 시궁창에 내던졌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양김은 서로가 군부와 손을 잡으면서 번갈아가며 황제와 유사한 대통령을 지냈다.
이제 이들은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면서 다시 새로운 이들이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16쿠데타에 대하여 쿠데타라고 이름붙인 민족일보 조용수사장을 법으로써 죽인 이회창후보가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사회의 실체가 무엇인 지를 알려주고 있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다시 누구를 죽일런 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나마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을 통하여 노무현후보를 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정당이라면 국민참여로는 부족하고 민들이 전적으로 추천한 후보를 내야 한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발전된 양식으로 후보가 된 그는 반혁명세력인 양김에 다시 붙어 민의 참여를 통하여 공천을 하기로 했던 부산시장을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일임하려다가 결국 자신이 직접 공천을 하면서 이미 반혁명세력이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민의 지지를 잃어버렸고 얼마 남지 않은 대선기간에 국민통합21의 정몽준후보와 단일화를 하려고 한다. 그래도 민은 노후보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기형적인 재벌출신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들의 단일화는 민의 요구가 아니고 오히려 민들은 그들의 단일화를 싫어한다. 사상과 정책이 다른 그들의 단일화는 오직 대선승리만을 위한 것이다. 지난 6월 혁명은 양김이 단일화를 거부함으로서 반혁명으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이제는 단일화의 추진을 통하여 질곡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오로지 이익만을 위하여 단일화를 하려는 이들은 소인들의 사당정치에 불과하다. 그들의 당은 붕당도 정당도 아닌 것으로서 이익이 사라지면 언제 다시 흩어질지 모르는 마치 동물농장과 같은 모임이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단지 사욕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들은 민의 존재를 우습게 알면서 단지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만 보고 있다.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그동안 민이 힘들게 이루었던 혁명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익만을 위한 소인들의 정치모임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민들은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붕당정치는 오늘날 민주정치에서 정당정치라는 것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붕당정치는 같은 도 즉 윤리를 기반으로 한 정책인데 반해 정당정치는 그저 같은 정책으로 뭉친 정치형태이다. 하지만 현대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윤리가 기반이 되기 때문에 정당정치는 붕당정치의 연속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후 우리의 정치사는 민주주의라는 정곡에서 벗어나 질곡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때마다 민은 질곡에서 벗어나 정곡으로 돌렸지만 정치인들이 다시 질곡으로 몰아넣었다.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민들은 4.19혁명을 성공시켰으나 다시 군인들에 의한 반혁명을 통하여 질곡으로 빠졌다. 이로 인하여 군부독재의 독기는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고 이를 거부하는 민들은 지난 87년 6월혁명의 성공으로 군부독재를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양김의 단일화 실패로 군부출신에게 정권을 넘기면서 민주화는 다시 연기되어 질곡으로 빠지고 말았다. 당시 민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양김에게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양김은 공익을 내던지고 오직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하여 온몸을 대선판에 내던졌다. 민들이 이루어낸 혁명을 양김은 반혁명으로써 6월혁명의 가치를 시궁창에 내던졌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양김은 서로가 군부와 손을 잡으면서 번갈아가며 황제와 유사한 대통령을 지냈다.
이제 이들은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면서 다시 새로운 이들이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16쿠데타에 대하여 쿠데타라고 이름붙인 민족일보 조용수사장을 법으로써 죽인 이회창후보가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사회의 실체가 무엇인 지를 알려주고 있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다시 누구를 죽일런 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나마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을 통하여 노무현후보를 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정당이라면 국민참여로는 부족하고 민들이 전적으로 추천한 후보를 내야 한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발전된 양식으로 후보가 된 그는 반혁명세력인 양김에 다시 붙어 민의 참여를 통하여 공천을 하기로 했던 부산시장을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일임하려다가 결국 자신이 직접 공천을 하면서 이미 반혁명세력이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민의 지지를 잃어버렸고 얼마 남지 않은 대선기간에 국민통합21의 정몽준후보와 단일화를 하려고 한다. 그래도 민은 노후보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기형적인 재벌출신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들의 단일화는 민의 요구가 아니고 오히려 민들은 그들의 단일화를 싫어한다. 사상과 정책이 다른 그들의 단일화는 오직 대선승리만을 위한 것이다. 지난 6월 혁명은 양김이 단일화를 거부함으로서 반혁명으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이제는 단일화의 추진을 통하여 질곡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오로지 이익만을 위하여 단일화를 하려는 이들은 소인들의 사당정치에 불과하다. 그들의 당은 붕당도 정당도 아닌 것으로서 이익이 사라지면 언제 다시 흩어질지 모르는 마치 동물농장과 같은 모임이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단지 사욕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들은 민의 존재를 우습게 알면서 단지 자신들이 정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만 보고 있다.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그동안 민이 힘들게 이루었던 혁명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익만을 위한 소인들의 정치모임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민들은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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