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본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데 살아가면서 이속을 챙기게 된다. 이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을 잘 따라주는 사람에게 정이 끌리게
마련이다. 그가 잘못을 하여 미워하게 될지라도 끝내 그에게 정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서로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여러 아들 중에서 장자였던 부소에게 황제자리를 물려 주려고 했으나 자신의 중앙집권을 반대하는 바람에 만리장성을 쌓는 공역장에 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잘 따르던 호를 총애하였다. 아마도 호가 진시황을 많이 닮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부소는 그 반대였을 것이다. 부소는 먼저 와서 공역을 지휘하던 몽염장군과 함께 짧은 생애를 보낸다.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더 오래 살고 싶어서 장생불사를 추구했던 진시황도 죽었다. 조고와 이사는 부소가 황제에 올랐을 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만리장성에 가서 부소와 몽염에게 자살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그 대신 가장 만만한 부소의 동생이 황제에 등극을 하였는데 그가 바로 북쪽 오랑캐와 같은 이름인 호였다. 본래 진시황은 호가 진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점괘를 듣고 몽염과 부소를 보내 호라고 일컫는 흉노를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게 했다. 그러나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만리장성 밖의 호가 아니라 아방궁 안에서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랐던 호였다. 호가 등극하자마자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면서 순식간에 기울어 자신을 등극시켰던 조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진나라는 항우에게 멸망당한다. 그 후 다시 유방과 항우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불과 얼마전 전쟁만큼이나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후보가 황제와 유사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한 당선은 그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그의 당선은 필연이라기 보다는 우연이다. 다수당의 이회창 후보가 지나치게 대통령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후보의 당선은 우연 일 수밖에 없다. 이후보는 아무런 이념도 없었고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도 분명치 않았다. 그는 단지 지금까지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든 고위직을 다해보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환상만 갖고 있는 사람처럼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도 대부분 별다른 정보 없이 막연하게 이후보가 당선되면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막연한 후보를 막연한 유권자들이 찍어준 셈이다. 막연한 유권자들은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이후보를 막연하게 지지했다. 마치 진시황이 자신을 닮은 호에게 물려주었으나 얼마 안가서 나라가 망한 것처럼 이후보는 그렇게 낙선했다. 그들은 이후보가 훗날 당선되면 자신들에게 창으로 어디를 겨눌 지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지지했던 것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막연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후보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 때문이다. 그들은 지역감정을 갖고서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을 정지시켰다. 또한 보수 언론들이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그렇게 낙선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낙선은 곧 자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마치 부소가 아무런 현실의식도 없었던 환관 조고의 말을 믿고 자살한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서 민이 원하는 사람이 후보로서 단 한사람도 출마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그들의 연극을 제대로 봐주는 관객은 한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끼리 공연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후보가 민의 대변자라고 자처하면서 출마했지만 역시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는 민이 뽑은 후보라고 보기가 어렵다. 단지 민의 대변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민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채 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유세는 마치 메아리와 같이 자신이 내뱉고 다시 자신의 귀속에서 맴돌 뿐 민의 반응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의 참여로 후보가 되어 민주주의 실현을 열망하는 민을 뒤로 한 채 과두정치의 장본인이었던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달려갔던 노무현 후보를 민의 대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여중생들을 위하여 서명도 하지 않았던 그를 민의 대변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단지 미군의 눈치 속에서 살아남을 궁리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뿐이다. 민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자신과 그 주위사람들만을 대변하는 후보일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그들은 민에게 자신들을 뽑아줄 것을 강요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을 대변하는 후보가 아니라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만이 출마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민을 대변하려면 민이 직접 참여하여 뽑아야만 가능하다.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여러 아들 중에서 장자였던 부소에게 황제자리를 물려 주려고 했으나 자신의 중앙집권을 반대하는 바람에 만리장성을 쌓는 공역장에 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잘 따르던 호를 총애하였다. 아마도 호가 진시황을 많이 닮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부소는 그 반대였을 것이다. 부소는 먼저 와서 공역을 지휘하던 몽염장군과 함께 짧은 생애를 보낸다.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더 오래 살고 싶어서 장생불사를 추구했던 진시황도 죽었다. 조고와 이사는 부소가 황제에 올랐을 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만리장성에 가서 부소와 몽염에게 자살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그 대신 가장 만만한 부소의 동생이 황제에 등극을 하였는데 그가 바로 북쪽 오랑캐와 같은 이름인 호였다. 본래 진시황은 호가 진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점괘를 듣고 몽염과 부소를 보내 호라고 일컫는 흉노를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게 했다. 그러나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만리장성 밖의 호가 아니라 아방궁 안에서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랐던 호였다. 호가 등극하자마자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면서 순식간에 기울어 자신을 등극시켰던 조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진나라는 항우에게 멸망당한다. 그 후 다시 유방과 항우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불과 얼마전 전쟁만큼이나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후보가 황제와 유사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한 당선은 그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그의 당선은 필연이라기 보다는 우연이다. 다수당의 이회창 후보가 지나치게 대통령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후보의 당선은 우연 일 수밖에 없다. 이후보는 아무런 이념도 없었고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도 분명치 않았다. 그는 단지 지금까지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든 고위직을 다해보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환상만 갖고 있는 사람처럼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도 대부분 별다른 정보 없이 막연하게 이후보가 당선되면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막연한 후보를 막연한 유권자들이 찍어준 셈이다. 막연한 유권자들은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이후보를 막연하게 지지했다. 마치 진시황이 자신을 닮은 호에게 물려주었으나 얼마 안가서 나라가 망한 것처럼 이후보는 그렇게 낙선했다. 그들은 이후보가 훗날 당선되면 자신들에게 창으로 어디를 겨눌 지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지지했던 것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막연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후보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 때문이다. 그들은 지역감정을 갖고서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을 정지시켰다. 또한 보수 언론들이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그렇게 낙선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낙선은 곧 자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마치 부소가 아무런 현실의식도 없었던 환관 조고의 말을 믿고 자살한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서 민이 원하는 사람이 후보로서 단 한사람도 출마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그들의 연극을 제대로 봐주는 관객은 한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끼리 공연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후보가 민의 대변자라고 자처하면서 출마했지만 역시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는 민이 뽑은 후보라고 보기가 어렵다. 단지 민의 대변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민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채 민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유세는 마치 메아리와 같이 자신이 내뱉고 다시 자신의 귀속에서 맴돌 뿐 민의 반응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의 참여로 후보가 되어 민주주의 실현을 열망하는 민을 뒤로 한 채 과두정치의 장본인이었던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달려갔던 노무현 후보를 민의 대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여중생들을 위하여 서명도 하지 않았던 그를 민의 대변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단지 미군의 눈치 속에서 살아남을 궁리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뿐이다. 민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자신과 그 주위사람들만을 대변하는 후보일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그들은 민에게 자신들을 뽑아줄 것을 강요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을 대변하는 후보가 아니라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만이 출마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민을 대변하려면 민이 직접 참여하여 뽑아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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