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참여정부의 개혁, 첫 단추부터 어긋나

daecho 2003. 3. 10. 02:32
참여정부가 내각을 구성하였는데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이 많이 진출하여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자리로서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에 구시대인물이 임명됨에 따라 앞으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이 추구하는 개혁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의문이다. 개혁이라는 말은 본래 『주역』의 「혁괘」에서 ‘바꾼다’는 뜻으로 나온 말로서 경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이러한 개혁은 주로 민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주의정치를 바탕으로 하여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조선시대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이었다. 중종은 반정을 통해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항상 반정공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조광조를 이용하였다. 하지만 조광조는 정치적인 이해보다는 민본주의로서 도학정치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중종과 조광조는 동상이몽을 꾸었던 셈이다. 조광조는 우선 과거시험이 아닌 추천으로 이루어지는 현량과를 시행하여 새로운 인재들을 뽑았고, 가짜공신들을 공신명부에서 삭제하였다. 이 때문에 공신들은 위협을 느꼈고 중종을 끼고서 조광조를 역모로 몰아 기묘사화라는 옥사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 퇴계는 조광조가 학문이 성숙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급박하게 개혁을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율곡은 조광조를 도학의 시조라 일컬었고 스스로 개혁을 주장하였다.

율곡은 현실에 대하여 창업의 시대가 지나면 수성을 하고 그 시대가 지나면 경장을 해야 하고 그 때가 지나면 다시 창업을 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당시를 경장의 시대라고 보았다. 하지만 경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해당하는 인물을 등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선조는 율곡의 말을 듣고서도 실행하지 않은 채 구신들을 그대로 썼다. 이 때문에 율곡은 경장을 하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니면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임금이 그 사람을 구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선조는 그 뜻이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장을 이루지 못한 채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같은 역사가 오늘날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는 총리에 고건 전 서울시장을 앉혔는데 이부터 이미 구시대의 인물이다. 고총리는 박정희 군부독재시대부터 줄곧 고관을 역임했던 인물로서 아직까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군부독재시대에 고관을 역임했다면 개혁을 외치고 있는 참여정부의 요청이 있다고 할지라도 고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어서 수락한 것을 보면 욕심이 무척 많아 보인다. 또한 노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선택했다는 것은 이미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의사가 적은 것이다. 여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반발하여 총리인준을 거부하면 처음부터 잡음이 일어난다. 이를 고려하여 그들과 유사한 구시대 인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태생자체가 이미 개혁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리를 설득하고 장관들과 화합하여 개혁을 추진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구습의 망령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노대통령의 형이 인사청탁을 받고 개입하려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이것이 이미 구습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국정에서 인사는 제일 중요한 일이다. 참여정부는 민이 직접참여하는 정부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독재정권시대에 민을 억압하는데 동참했던 인물을 총리로 발탁했다면 슬로건과 어긋난다. 좋은 것이 좋다며 대강 넘어간다면 또다시 외환위기와 유사한 위기가 올 수 있다. 지난 국민정부는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발목을 잡아서 개혁을 제대로 이루질 못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국민통합21이 대선투표 직전에 스스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국민정부 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총리인선은 노대통령이 스스로 발목에 쇠고랑을 찬 셈이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는 첫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광조와 같은 인물을 등용하여 그와 함께 급박하게 개혁추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혁의 뜻을 잃지 않고 기초라도 다져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노대통령의 뜻이 확고하면 그 일부라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