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상은 선에 있지만 현실은 먹고사는데 있다. 이 때문에 경제는 인간 뿐만아니라 국가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일 수밖에 없다. 현재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에 달한 북한은 민족의 자주성을 슬로건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버텨왔으나 경제곤란으로 인하여 핵개발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과거의 북한은 미국을 반대하는 제3세계국가들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6.25전쟁 당시 강력한 유엔군의 북진을 막은 것은 제3세계국가들에게 미국의 월남전패배에 못지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6.25전쟁이후 남한은 미군이 진주했으나 북한은 자주국방을 해왔다. 더욱이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발표하면서 중국과 구소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전쟁 이전에 결성된 소련 중심의 코민포름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의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민족주의를 가미한 것이다. 맑시즘에서는 민족의 실체를 부정하고 오직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등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맑시즘의 교조주의적인 이데올로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은 일제당시 보천보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 항일투쟁으로 유명하였고 해방 후 일제잔재청산을 위하여 친일분자들을 모두 숙청하였다. 반면에 남한은 일제청산을 위하여 반민특위를 조직하여 친일분자들을 검거하고 재판에 회부하였으나 미군정, 이승만정부,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비하면 북한 김일성의 결단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김일성도 아들인 김정일에게 후계를 물려주면서 봉건시대 왕조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한계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1968년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원산앞바다에서 잡아 협상 끝에 배를 압수하였다. 11개월 동안의 협상 끝에 미국의 존슨정부는 북한영해침입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다음의 닉슨정부가 결국 몸값을 주고 선원 82명과 사체 1구를 돌려받았으나 북한은 배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것은 강대국을 상대로 북한이 자주적인 위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상대로 강했던 북한도 경제문제는 그리 쉽게 풀지 못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하였고 이로 인하여 생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은 90년대 냉해로 인하여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급기야 탈북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두만강가의 꽃제비들은 식량난으로 인하여 사회가 피폐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남한의 경제력은 커져서 군사력에서도 북한을 앞서게 되었고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북한을 압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난 때문에 국방비에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보여준 자주적인 북한이 무릎꿇고 빌수만은 없었고 그 대신 핵무기개발이라는 최후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의 제네바협상에서 전력을 마련키 위하여 필요한 경수로건설과 식량지원을 약속받았다. 당시 남한은 협상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협상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제네바협상을 미국은 어겼고 더군다나 그들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이라크점령을 완수하고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눈을 돌리면서 중국과 더불어 북경에서 3자회담을 하고 있다. 남한이 협상테이블에 있어야 되지만 주한미군이 있는 한 자주적인 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주한미군철수를 외치면서 미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군감축, 단계적인 미군철수를 진행시키면서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를 통하여 경제교류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남북민들의 교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북한의 경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면 북한도 구태여 핵개발을 하겠다며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되면 남북을 가로막았던 장애가 사라지게 된다. 이 때 형식적으로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하여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과거의 북한은 미국을 반대하는 제3세계국가들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6.25전쟁 당시 강력한 유엔군의 북진을 막은 것은 제3세계국가들에게 미국의 월남전패배에 못지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6.25전쟁이후 남한은 미군이 진주했으나 북한은 자주국방을 해왔다. 더욱이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발표하면서 중국과 구소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전쟁 이전에 결성된 소련 중심의 코민포름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의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민족주의를 가미한 것이다. 맑시즘에서는 민족의 실체를 부정하고 오직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등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맑시즘의 교조주의적인 이데올로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은 일제당시 보천보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 항일투쟁으로 유명하였고 해방 후 일제잔재청산을 위하여 친일분자들을 모두 숙청하였다. 반면에 남한은 일제청산을 위하여 반민특위를 조직하여 친일분자들을 검거하고 재판에 회부하였으나 미군정, 이승만정부, 경찰의 방해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비하면 북한 김일성의 결단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김일성도 아들인 김정일에게 후계를 물려주면서 봉건시대 왕조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한계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1968년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원산앞바다에서 잡아 협상 끝에 배를 압수하였다. 11개월 동안의 협상 끝에 미국의 존슨정부는 북한영해침입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다음의 닉슨정부가 결국 몸값을 주고 선원 82명과 사체 1구를 돌려받았으나 북한은 배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것은 강대국을 상대로 북한이 자주적인 위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상대로 강했던 북한도 경제문제는 그리 쉽게 풀지 못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하였고 이로 인하여 생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은 90년대 냉해로 인하여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급기야 탈북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두만강가의 꽃제비들은 식량난으로 인하여 사회가 피폐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남한의 경제력은 커져서 군사력에서도 북한을 앞서게 되었고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북한을 압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난 때문에 국방비에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보여준 자주적인 북한이 무릎꿇고 빌수만은 없었고 그 대신 핵무기개발이라는 최후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의 제네바협상에서 전력을 마련키 위하여 필요한 경수로건설과 식량지원을 약속받았다. 당시 남한은 협상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협상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제네바협상을 미국은 어겼고 더군다나 그들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이라크점령을 완수하고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눈을 돌리면서 중국과 더불어 북경에서 3자회담을 하고 있다. 남한이 협상테이블에 있어야 되지만 주한미군이 있는 한 자주적인 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주한미군철수를 외치면서 미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군감축, 단계적인 미군철수를 진행시키면서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를 통하여 경제교류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남북민들의 교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북한의 경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면 북한도 구태여 핵개발을 하겠다며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되면 남북을 가로막았던 장애가 사라지게 된다. 이 때 형식적으로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하여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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