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영화 '노스텔지아' : 회귀 그리고 구원

daecho 2006. 8. 16. 15:24
 

이 영화는 러시아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작품으로서 1983년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감독 특유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소양이 묻어난다. 특히 흑백과 칼라가 어우러져 ‘노스텔지아’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향수를 물씬 풍기게 한다.


러시아의 시인 안드레이 고르차코프는 작곡가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찾기 위하여 이탈리아에 온다. 통역인 유제니아와 함께 여행한다. 유제니아는 안드레이를 유혹하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일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소스노프스키가 이탈리아에서 고향 러시아를 그리워하듯이 안드레이는 짙은 향수를 느낀다. 이 때 안드레이는 도메니코라는 미치광이로 소문난 노인을 만나면서 그에게 매료된다. 도메니코는 곧 인류가 종말이 닥칠 것이라고 믿는다. 종말에서 구원하려면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하기 위하여 길거리 온천탕에서 촛불을 밝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미치광이로 소문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광장에서 사흘 동안 쉬지 않고 연설한다. 그는 분신이라는 희생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려고 스스로 자기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다. 그리고 그의 부탁을 받은 안드레이는 촛불 두 개를 들고 온천탕을 걷는다.


촛불과 온천탕은 불과 물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이다. 물과 불이 만났을 때 생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혼란한 인류는 최초의 탄생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회귀는 그곳 사람으로부터 미치광이로 오인받는 것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한사람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메니코는 온천 옆에 있는 광장에서 분신한다. 이 역시 온천이라는 물과 불의 만남으로서 본래적인 생명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자신은 죽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회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희생을 통한 인류의 구원인 것이다. 또한 안드레이가 촛불 두 개를 들고 온천을 가로질러 걷는 것도 회귀이다. 물론 도메니코가 말했을 때와 달리 온천이 말라 물이 조금 밖에 없었다. 그것이 절망과 희망이 함께 있는 것이다. 온천이 말랐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말라있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절망이지만, 그래도 조금의 물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생명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희망이다. 따라서 생명의 근원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회귀, 희생을 통한 구원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근원적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주술적이고 샤마니즘적이다. 도메니코가 분신한다고 해서 인류가 구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믿고 있으며 지식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리이도 믿을 뿐만 아니라 도메니코의 말을 실천한다. 그것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믿음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종교적이다. 그것은 다음 영화인 ‘희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현실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을 믿고 실천한다. 근거가 있어야만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이라야 진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혼란한 현실은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하여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물과 불의 만남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안드레이가 촛불 두 개를 들고 온천을 가로지르는 것이며, 도메니크가 온천 옆의 광장에서 석유를 뿌리고 분신하는 것이다. 한줌의 재가 되지만 그로 인하여 인류를 종말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재가 되는 것은 바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재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도메니코가 재가 되어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이 재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도메니코의 믿음일 뿐이다.


이 영화는 인간이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사고를 깬다. 근원으로 회귀하고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한사람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왜 희생해야 하는가? 구원해야 하는가? 회귀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감독은 도메니코를 통하여 믿음 즉 신앙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답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기적으로 살고 있을지라도 종교적 신앙에 대하여 향수를 느끼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통하여 이기적인 삶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하여 한사람이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것도 인간의 본성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