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달라이라마

daecho 2002. 2. 4. 14:56
제목 : 정부의 달라이라마 방한불허 소식을 접하며

티벳은 옛날에 중국의 역대왕조를 끊임없이 위협했던 강력한 민족이었다. 한나라 때는 견융이라하여 한나라 황제가 해마다 조공을 받치고 궁녀까지도 받쳐야 했다. 한나라 원제는 궁녀들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왕소군을 견융의 추장에게 받쳐야 했다. 왕소군은 결국 견융 추장을 받들게 됐으나 그의 부인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 추장이 청혼을 했으나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미뤘다. 원제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거절하라고 할 줄을 믿었으나 오히려 원제는 견융의 추장을 따르라는 말을 믿고 결국 시집을 갔다. 그러나 평생 한나라 복장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시선이라 불리워지는 이태백은 왕소군의 비석을 지나면서 ‘왕소군’이라는 유명한 한시에서 ‘오늘은 한나라 궁녀였으나 내일은 오랑캐의 첩이 될 수밖에 없구나’라고 읊었다.

<옛중국, 티벳에 조공 받쳐>
이와 같이 약한 중국의 한을 시로서 한풀이 하면서 되새겼던 것이다. 그 후에도 중국의 역대왕조는 티벳으로부터 항상 위협을 받아야 했다. 당.송나라 때는 티벳은 토번국이었고 명대까지도 그들의 위협을 항상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만주족인 청나라 때 티벳은 중국의 영토가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티벳은 또한 서역이라고 불리워지면서 서양과 교역하는 실크로드(비단길)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국은 실크로드를 거쳐 흑해를 지나 다뉴브강을 통해 멀리 서양에까지 교역을 했던 것이다.
또 티벳은 인도불교를 중국에 전파하게 되는 교량역할을 했다. 소위 대승불교라고 하는 불교가 이곳을 통해 전해졌던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티벳은 불교민족이다. 달라이라마라고 하는 불교의 수장이 곧 통치자이다. 이 때문에 티벳불교는 바로 라마교이고 승려들을 포함 백성들은 모두가 라마교도이다.

<현중국, 티벳탄압>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모택동은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려고 문화혁명을 일으켜 티벳의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모택동은 ‘종교는 아편과 같다’라고 하면서 수만명의 티벳의 승려를 학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모택동의 이같은 사상은 공산주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포이엘바하에서부터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사상은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을 요구하는 티벳의 승려들, 특히 수장인 달라이라마로 인해 자신의 권력이 불안정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모택동의 탄압으로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게 되고 이 때부터 티벳의 독립운동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달라이라마 방한 간섭>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지난 11월6일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다웨이 주한중국대사는 지난 9월8일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아시아.태평양정책연구회 월례 토론회 초청강연에서 "달라이라마가 온다고 설마 양국 관계가 단교까지는 가겠느냐" 면서도 "일반 중국인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사실로 양국관계에 일종의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며,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바 있다.
이에대해 방한준비위 상임집행위원장인 성관스님은 지난 9월 8일 오전 수송동 사무실에서 "달라이라마가 미국과 유럽 등 여러나라를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유독 한국방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통상적인 관례를 벗어나는 외교적 언사를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며 이같이 밝혔다. 성관스님은 또 "국민의 정부에서 외교를 이끌어 가는 당국자들의 태도도 실망스럽다"면서 "정부는 자주국가로서 달라이라마의 방한문제에 대해 당당한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12월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상 국익을 위해서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옛날 티벳으로부터 위협받았던 중국이 이제 와서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지 남의 나라를 방문하는 것까지도 관여하고 있는 것이 격세지감을 일으키게 한다. 또한 자주적인 외교를 펼치지 못하는 우리도 서러운 느낌마저 들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