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라는 논쟁이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이 우세하다가 훗날
동론(同論)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를 놓고 보았을 때 본래 인간들의 생활은 동물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본성이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쨋든 지 간에 처음의 인간사회는 동물과 같이 모계중심의 사회였다. 특히 우리와 같이 유목민족들에게는 모계사회의 전통이 임진왜란 직전까지 이어 내려왔다. 그 전통이 바로 데릴사위제였고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를 들어 자식을 한명 낳을 때까지 처가살이를 했는데 대다수가 평생 처가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남자보다는 여자 특히 아줌마들의 파워는 전통적으로 강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율곡은 고향이 파주였으나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고 벼슬에서 물러나자 처가인 해주에서 살았다. 그러나 조선의 지도이념이 가부장적인 남자중심의 유교였기 때문에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와서 본가에서 결혼식을 하는 주자가례를 시행할 것을 의무화했으나 지켜지지 않아 주자가례와 전통혼례인 데릴사위제도를 절충하는 안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초야를 보내고 신랑 본가로 데리고 오는 결혼식이었다. 이같은 절충안을 명종 때 내놓았으나 당시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다만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전체인구가 반으로 줄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모든 사회제도가 무너지면서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유교예법으로 사회제도를 만들면서 절충안이 서서히 시행되면서 오늘날까지 전통혼례로 남아있게 되었다.
또한 여자들은 예전에는 얼굴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는데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얼굴을 가리는 장옷을 입거나 지붕있는 가마를 타고 다니도록 하였다. 이와같이 가부장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여자의 활동을 억누르는 제도가 임진왜란 이후에 제도화되었으나 본래 우리민족이 여자가 드세었기 때문에 아줌마들의 활동은 그칠새가 없었다. 그들은 낮에는 활동에 제약이
많기 때문에 주로 밤에 초롱을 들고 시내를 활보하면서 활동을 하여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19세기말 영국여행가 비숍여사는 증언하였다.
이러한 아줌마들은 임진왜란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권력의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숱한 당쟁의 옥사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숙종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파워게임, 영조때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 순조때 세도가 김대비 등이 당시 옥사사건을 주도했던 슈퍼아줌마들이다.
오늘날에도 아줌마들의 전통이 이어져 세기말부터 21세기 벽두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떠들썩했던 고위급들의 부인들이 일으킨 옷로비 의혹사건이 끝나는가 싶더니 서울고법 항소심판결이 있었다. 지난 23일이 선고결과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회장 부인 이형자(55),영기(51)씨 자매에 대해 1심과 같이 무죄,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55)씨와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62)씨에 대하여 모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아줌마파워를 계승하여 남편들의 권력을 대신하려 했거던 장본인들이다. 이들로 인하여 그 남편들은 평생 쌓아온 명예를 먹칠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의 전통인 아줌마파워를 과시하다가 자신들도 함께 먹칠을 당했던 슈퍼아줌마들이다.
어쨋든 지 간에 처음의 인간사회는 동물과 같이 모계중심의 사회였다. 특히 우리와 같이 유목민족들에게는 모계사회의 전통이 임진왜란 직전까지 이어 내려왔다. 그 전통이 바로 데릴사위제였고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를 들어 자식을 한명 낳을 때까지 처가살이를 했는데 대다수가 평생 처가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남자보다는 여자 특히 아줌마들의 파워는 전통적으로 강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율곡은 고향이 파주였으나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고 벼슬에서 물러나자 처가인 해주에서 살았다. 그러나 조선의 지도이념이 가부장적인 남자중심의 유교였기 때문에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와서 본가에서 결혼식을 하는 주자가례를 시행할 것을 의무화했으나 지켜지지 않아 주자가례와 전통혼례인 데릴사위제도를 절충하는 안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초야를 보내고 신랑 본가로 데리고 오는 결혼식이었다. 이같은 절충안을 명종 때 내놓았으나 당시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다만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전체인구가 반으로 줄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모든 사회제도가 무너지면서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유교예법으로 사회제도를 만들면서 절충안이 서서히 시행되면서 오늘날까지 전통혼례로 남아있게 되었다.
또한 여자들은 예전에는 얼굴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는데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얼굴을 가리는 장옷을 입거나 지붕있는 가마를 타고 다니도록 하였다. 이와같이 가부장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여자의 활동을 억누르는 제도가 임진왜란 이후에 제도화되었으나 본래 우리민족이 여자가 드세었기 때문에 아줌마들의 활동은 그칠새가 없었다. 그들은 낮에는 활동에 제약이
많기 때문에 주로 밤에 초롱을 들고 시내를 활보하면서 활동을 하여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19세기말 영국여행가 비숍여사는 증언하였다.
이러한 아줌마들은 임진왜란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권력의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숱한 당쟁의 옥사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숙종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파워게임, 영조때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 순조때 세도가 김대비 등이 당시 옥사사건을 주도했던 슈퍼아줌마들이다.
오늘날에도 아줌마들의 전통이 이어져 세기말부터 21세기 벽두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떠들썩했던 고위급들의 부인들이 일으킨 옷로비 의혹사건이 끝나는가 싶더니 서울고법 항소심판결이 있었다. 지난 23일이 선고결과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회장 부인 이형자(55),영기(51)씨 자매에 대해 1심과 같이 무죄,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55)씨와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62)씨에 대하여 모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아줌마파워를 계승하여 남편들의 권력을 대신하려 했거던 장본인들이다. 이들로 인하여 그 남편들은 평생 쌓아온 명예를 먹칠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의 전통인 아줌마파워를 과시하다가 자신들도 함께 먹칠을 당했던 슈퍼아줌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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