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장용학의 단편소설 '인간의 종언' : 개인 욕구와 윤리의 갈등

daecho 2009. 7. 11. 14:46

잘 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모두 있다. 물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있지만 그 역시 잘 살고 싶지만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있어난다. 그러나 잘 살고 싶은데 윤리에 걸리면 선택하기 곤란할 것이다. 특히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선택하기 더욱더 어렵다. 특히 현재 우리사회에서 유교윤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은 더욱더 힘들어진다.

 

그러한 점에서 장용학의 단편소설 '인간의 종언'은 개인의 욕구와 윤리의 갈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상화는 천재수학도로서 장래가 촉망되지만 문둥병환자이다. 이 때문에 미국유학도 결렬되고 만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치료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 때 집에 화재가 일어나 부인과 4살짜리 어린 아들이 죽어간다. 이 때 상화는 아들의 간을 꺼내 먹는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리와 갈등을 일으킨다. 문둥병환자로 살아야 하는가? 어린 아들의 간을 먹고 번듯한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갈등을 하는데 결국 그는 후자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먹었다는 죄책감이 생겨 인간의 종언을 선언한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불쌍하게 죽어가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이고 그 간을 먹은 것에 대한 처절한 절규였던 것이다.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하여 아들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유교윤리에 위반되는 것이다. 유교는 가족을 국가 보다 더 중요시 한다. 특히 맹자는 부자유친이라고 하여 군신유의 보다 더 앞세웠다. 그러한 영향이 한국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참다운 윤리라고 생각하여 지키고 있으며 상화는 그러한 윤리를 깨뜨렸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절규하고 만다.

 

그러한 윤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절규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윤리가 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모두 좋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최선의 윤리이다. 하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내가 우선인가 다른 사람이 우선인가가 문제이다.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했을 때 상화는 문둥병환자로 살다가 죽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나를 우선했을 때 그는 아들의 간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는 후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나를 우선으로 하는 윤리라면 그는 지탄받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행위를 인간의 윤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장용학은 이와 같이 개인의 욕구와 윤리의 갈등에 대하여 후자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 역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윤리를 우선시 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의 종언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갈등을 절절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인간의 종언이기 때문에 개인의 욕구충족 보다 윤리의식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장용학은 기존관습에 파문을 던지는 문제의식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써왔다. 인간의 종언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 비하여 기존관습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