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국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난 후 숫자가 늘어나자 씨족이 생겼고 그것이 확대되어 부족이 생겼다. 서로 다른 부족들 간에 먹고 살기 위하여 싸우다 보니 이를 중재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지도자가 생겨났다. 지도자는 구성원들을 위하여 그들과 합의하에 율령을 정하면서부터 국가는 비로소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가란 국민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이 없는 국가란 있을 수 없다. 국가는 국민들을 국내외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위해서 세금을 낸다. 그 세금을 갖고 지도자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러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도자는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파병반대를 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은 국익을 위하여 이라크파병을 고집하고 있다.
국익이란 국민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국익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그가 말하는 국익이 자신의 이익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파병추진으로 인하여 무고한 시민이 이라크에서 참수 당했다. 그 소식을 접한 즉시 그는 그래도 파병할 것이라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였다. 이라크 테러단의 공포 속에서 파병반대를 절규하는 김선일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노대통령은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방송화면으로 김선일씨의 절규를 들으면서 드라마대사 쯤으로 여긴 것 같았다. 노대통령 자신의 가족이 이라크 테러단에 잡혀 파병반대를 외치는 모습을 본다면 드라마 대사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파국 속에서도 이라크파병이 시대의 진리인 것처럼 재천명하는 그는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지 알 수 없다. 그는 진리의 수호자인냥 4천만 국민이 모두 반대해도 진리는 영원하다는 소신으로 그렇게 몇마디 던지고 사라져 버렸다. 그의 목소리 속에서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그만의 특유한 말투를 듣고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이었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모든 국민의 목소리는 철없는 어린애의 투정에 불과하고, 자신의 말은 진리로서 마치 숭고한 성직자마냥 행세하는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현실 속에서 탄핵으로 부터 구해준 국민을 그는 그렇게 죽이고 말았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노대통령 당신 개인재산인가?”. “국민은 쓰다버려도 좋은 소모품인가?” 라고 그에게 묻고 싶다. 더 이상 얼마나 많은 국민이 희생당해야 그의 마음이 돌아설 것인가?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직 노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몇 사람만을 위하여 존재할 뿐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제 없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만이 있을 뿐이고 실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꿈 속에서 잠꼬대 하듯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실재하지도 않은 대한민국을 환상 속에서 부여잡고 있을 뿐이다.
'시사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속과 자유 (0) | 2005.04.04 |
---|---|
시대착오적인 대법원 판결 (0) | 2004.09.03 |
남한의 미군, 주둔군인가? 점령군인가? (0) | 2004.06.10 |
4.15총선, 거지정치의 개막 (0) | 2004.04.17 |
탄핵사건, 그들의 가족만을 위한 코미디 (0) | 2004.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