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한강의 ‘몽고반점’ : 미와 선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

daecho 2006. 10. 28. 21:07
                

아름다움의 추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윤리 즉 선의 추구는 원초적인 감정이라기 보다 이성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미는 선천적인 것이지만 선은 경험적인 것이 다른 점이다. 물론 미와 선이 일치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늘 미와 선이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1. 미와 선의 갈등


200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몽고반점’은 미를 추구하면서 선이란 걸림돌에 채여 비극적으로 끝나는 과정을 숨 가쁘게 표현하고 있다. 사진작가로서 아름다운 모델의 보디페인팅을 촬영하지만 작가와 모델의 관계는 형부와 처제라는 후천적인 가족관계이다. 형제자매라면 선천적인 혈연관계이므로 에로스적인 사랑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형부와 처제는 선천적인 관계가 아니라 후천적인 관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부인과 결혼함으로 인하여 맺어진 관계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윤리에 근거한 것이므로 에로스적인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형제자매 그리고 형부와 처제 등의 관계에서 에로스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은 선에 위반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사고이다.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안정을 위하여 만들어낸 사고이자 문화이다.


특히 유교문화에서 그러한 의식은 절대시된다. 물론 유교문화가 아닌 사회에서도 그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가 아닌 사회에서 형부와 처제는 물론 형제자매 간에도 에로스적인 사랑은 충분히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성관계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선에 위배되는 않는다. 그러한 사회라면 ‘몽고반점’은 주목받을 이유가 없다. 다만 유교문화권에서 그 소설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소설은 보편성, 일반성을 갖는 다기 보다 개별성, 특수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 사랑을 통한 미의 창조


사진작가는 최고의 미를 촬영하기 위하여 처제의 몸에 페인팅을 한다. 물론 작가가 처제를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처제의 몸에 알맞게 페인팅을 한다. 하지만 그 모델이 누구나 인정하는 미를 가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작가의 생각에 최고의 미였던 것이고 그것은 작가와 모델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러했던 것이다. 만약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모델의 미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델의 보디페인팅은 후배인 작가로부터 감탄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다른 작가가 그 모델의 몸에 페인팅을 했다고 해서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델로 선택하고 보디페인팅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네킹과 같은 틀에 박힌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을 촬영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보편적이면서도 절대적인 미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상대적인 미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장자도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미는 없다고 은유적으로 말한다. 당시 최고의 미인이었던 여희가 산에 가면 사슴들이 도망가고 연못에 가면 물고기들이 도망간다. 여희는 당시 사람들이 최고의 미인이라고 인정하지만 사슴이나 물고기에게는 미인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형부가 처제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보디페인팅을 통해서 미를 창조해냈다. 그것은 기존에 있었던 미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그것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러나 미의 창조로 인하여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선으로 인한 갈등은 더욱더 깊어진다. 결국 부인에게 들키게 되고 처제는 자살을 선택한다. 순간 형부의 사랑의 결실로 나타난 아름다운 처제의 보디페인팅은 뉴스를 통하여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것은 형부와 처제의 관계에서 창조된 아름다움이 보편성을 지닌 미로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아름다움 보다 추한 졸작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